불필요하게 어려운 말을 쓰는 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1.

이 블로그의 쥔장이 개론서 읽기를 좋아한다는 말은 몇 번 드렸던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서점 돌아다니며 컴퓨터 아키텍쳐 관련된 여러 가지 개론서(학부와 대학원 과정의 교과서로 많이 사용되는)들을 사모아서 읽는 것을 좋아했었지요.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대가들이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걸 이런 형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구나.. 뭐 그런 거죠. 그런데, 대가들의 책을 보면 참 재미있는 것이 서로 다른 내용을 다른 시각에서 쉽게 표현한다는 겁니다. 아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도 신기한데, 쉽게 표현하기까지.. 정말 대단한 거죠.

쉽게 표현되었다고 쉽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저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글이나 말을 하다 어느 틈엔가 잰체하게 되고, 어느 순간엔 굳이 영어도 섞어 쓰고, 한문도 섞어 쓰고 그렇게 되고 있더군요. 한마디로, ‘나 유식하다’라는 것이죠. ^^; 한날 님의 글(http://www.hannal.net/think/plain_language_for_us/)에서 이야기 된 것과 같이 ‘불필요하게’ 어려운 글을 쓰는 건 어찌 보면 폭력이지요. 그런데, 실은 어려운 용어를 섞어 쓰는 건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것도 힘든데, 이걸 또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는 건 더 힘든 거죠. 용어를 사용하면 말하기 쉽지만, 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걸 풀어서 적절히 사용하는 건 더 어려운 것이지요. (사실, 용어를 알고 있는 엔지니어나 연구자들간에는 굳이 풀어 쓰는 것 보다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간결하고 좋습니다. 그렇게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 용어(用語)니까요 ^^; 여기서 말하는 건 해당 분야를 모르는 분이나 초보자 분들께 설명할 때의 이야기지요. )

 

2.

용어의 문제는 오래된 과제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일본에서 번역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풍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요. 한때, 일본화된 용어들을 한글화하자는 운동이 물리학 쪽에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그래서, 전기장을 ‘전기 마당’과 같이 표현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요즘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용어를 원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원서를 볼 때 이득이 있습니다만, 용어를 일본식 한자로 풀고 이것을 이용하는 것은 (역시 한자를 쉽게 이해하는 분들께는 그 자체로 의미로 가집니다만) 그 자체로 ‘암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art.oriented님의 글(http://minjang.egloos.com/2104968 )에서 이야기 된 투기적 실행(speculative execution)의 경우 일본 책에서 온 용어인데, 마땅히 대체할 용어가 없어서 사용하고 있지요. 근데, 투기적 실행이라는 용어를 학부 때 처음 들었을 때 저는 투기(鬪技)를 먼저 생각했다는 슬픈 사연이… (한창 격투기 만화를 좋아해서 그런지도..). 요즘엔 예측 수행이란 말도 많이 사용되는데, alt.oriented님의 말처럼 약간은 느낌이 prediction과 비슷해서 약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이 블로그의 쥔장은 speculative execution이 prediction 기법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굳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투기=사기 라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뜸금없는 생각인데, 일본은 이런 용어를 누가 정리하나요? ㅋㅋ 비교적 일관되게 나오던데..

 

3.

참고적으로, 책을 많이 보세요. 저도 석사 때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이런 저런 논문을 많이 보려고 노력 했었는데, 나중에 책을 보니 좋은 논문을 잘 소개했을 뿐더라 옥석도 잘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논문은 최근 것만 보고 예전 것들은 되도록 책을 통해서 한번 걸러진 것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접근할 때는 책이 최고에요 ^^; 없으면 survey 논문.. ^^;

5 thoughts on “불필요하게 어려운 말을 쓰는 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1. 많이 공감합니다. 공감하는 내용인데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 글에 다 있다보니 댓글에 더 무어라 쓰기 참 어렵군요. ^^;
    .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번역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외래어 용어 사전 만들기도 우리보다 더 꼼꼼하게적극 처리하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다른나랏말을 배우려 애쓰고, 그것도 모자라서 익히려는 분야를 가르치는 사교육 기관에 가는 비용보다는 사회(나라) 차원에서 번역에 투자를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것 같습니다. 🙂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 서점 둘러보니 정말 부럽더라고요.

    1. 정부차원에서 잘하고 있는 것이었군요. 우리도 그런 프로젝트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항상 그렇듯 “돈이 안되는 프로젝트는 유야 무야 사라진다”는 법칙이 적용되더군요.

  2. 좋은 용어는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죠. 회사에서는 정확한 의미도 모르면서 약자로 된 용어를 쓰는 경우를 많이 목격합니다. 또 영어와 한글이 뒤섞인 정체불명의 용어도 많이 사용하더군요.
    막상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뜻이나 원문을 물어보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PO를 받았나, AOP를 작성했나, BOD의 승인이 나야되니…

    사실 전문용어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는 많이 보지요. T.O.가 모자라 불합격 했다라고 하면서 T.O.가 무엇의 약지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영어권에서도 과연 Presentation을 PT라고 줄여서 사용할지…

    일본은 국가정책이 잘되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언어적인 한계와 줄여쓰기 좋아하는 문화때문에 국가차원의 노력이 필요했으리라 봅니다. 일본에서 비-루(beer)와 비루(building)는 완전히 다른 단어이지요.

    1. 좋은 용어란 그 의미 그대로 팍~! 와서 박히는 그런 용어인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께서 Queue를 ‘대롱’으로 번역하신 분이 계셨는데(그 책이 상당히 유명했지요. 특히하고 독창적인 용어 선택으로 인해서..), 몇몇 용어는 그렇게 번역하면 머리에 명확히 전달될 것 같더군요.. ^^;
      익숙함과 이쪽 분야에서 널리 퍼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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